바로가기 메뉴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메뉴닫기

관광도우미

여행후기

보령에 와서 알게 된 사실들 글의 상세내용 : 글의 상세내용을 확인하는 표로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 첨부, 내용으로 나뉘어 설명합니다.
제목 질문 보령에 와서 알게 된 사실들
작성자 조** 등록일 2023-11-22 조회 43
첨부 jpg파일 첨부 20231114_070748241_iOS.jpg(2.94MB) 미리보기
jpg파일 첨부 20231112_040155476_iOS.jpg(3.80MB) 미리보기
jpg파일 첨부 20231112_044403891_iOS.jpg(3.53MB) 미리보기
여행은 지도의 한 점에 지나지 않는 ‘어느 곳’의 공간성을 체험과 추억이 결부되는 ‘그 곳’의 장소성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내가 열흘을 보낸 보령은 이제 내 생의 하드 디스크에 저장된 ‘그 곳’ 이 되었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보령’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단어는 ‘종로5가 보령약국 밖에 없었다, 이 번 보령 한 달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여행은 떠나기 전에 이미 시작된다. 숙소를 알아보고 일정을 짜면서 대천 해수욕장 그리고 열리는 바닷길로 유명한 무창포가 보령시에 속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보령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선산이 보령에 있다는 선배, 아내 친구의 고향인 서천이 바로 보령 밑에 있다는 등의 인연을 들으며 방문도 하기 전에 보령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보령 열흘 여행은 무창포에서 시작해서 무창포에서 끝났다. 무창포 휴양체험마을에서 직영하는 조용한 펜션에서 묵으면서 보령 전역을 답사했다. 비록 철이 지나고 혼자라서 체험은 많이 못했지만, 보령시의 북단 천북면 굴 단지로부터 남부 보령 호수까지 보령시에서 추천하는 자연과 문화 명소를 부지런히 방문했다.

그 중 가장 기억나는 곳은 종교 유적지 2 곳이다.

성주사 절터에서 가서 소실된 건축물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잔존하고 있는 석탑과 석비를 통해서나마 통일 신라 때 융성했던 불교 선종 문화의 궤적을 알아볼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특히 천년을 넘겨 보존되고 있는 대낭혜화상 탑비와 최치원이 지었다는 탑명塔銘에 감동했다.

조선 말 천주교 병인박해가 시작된 직후인 1866년 3월 30일, 다블뤼 주교 등 세 명의 프랑스인 천주교 성직자와 두 명의 신자가 충청 수영성 근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군문 효수형을 당했는데, 그 장소가 바로 보령시 오천면 바닷가에 있는 갈매못 순교 성지다.

갈매못 성지는 역사적으로 많은 신자들이 이곳으로 이송되어 순교한 곳일 뿐 아니라, 다블뤼 주교의 유품과 유물이 소장돼 있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성지이다. 순교자 기념비, 기념관, 사제관, 수녀원 등이 건립돼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석탄 생산의 10%을 책임졌었다는 충남 탄전의 중심에 보령이 있었다는 것도 이번에 성주면 보령석탄박물관에 가서 알게 되었다. 또한 비석에 쓰는 오석과 붓글씨 쓸 때 먹을 가는 벼루가 보령 남포의 특산품이라는 사실은 웅천읍에 있는 웅천돌문화공원에 가서야 알았다.

보령 9경 중의 하나로 추천하는 외연도를 여행 마지막 날 답사하려고 계획했다가 풍랑주의보로 배편이 없어 포기한 게 아쉽다.

무창포의 낙조가 눈에 어른거린다.

목록

담당부서 :
관광과
담당자 :
김성희
연락처 :
041-930-6564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top버튼